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 그는 무엇을 상징할까?

by 내 삶에 좋은 정보 2025. 9. 23.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오나시는 단순한 괴물이 아닌 현대인의 내면을 상징하는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얼굴도 말도 없이 등장해 처음에는 조용하고 순한 모습이지만, 외부 자극에 반응하며 욕망과 외로움에 휘둘려 괴물처럼 폭주합니다. 하지만 후반에는 다시 평화로운 존재로 변화하며, 이러한 극적 변모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치입니다.

alt="가오나시 일러스트 - 얼굴 없는 영혼이 붉은 다리 위에 홀로 서 있는 이미지, 외로움과 정체성의 상징적 분위기"

정체성을 잃은 존재 – 타인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자아

‘가오나시’는 그 이름처럼 얼굴이 없는 존재입니다. 말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다른 인물의 말투와 감정을 흡수해 표현합니다. 이는 곧 자기 목소리를 잃고, 타인의 시선과 반응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자아상을 상징합니다. 그는 자신의 언어를 갖지 않고, 행동 역시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결정합니다. 치히로에게 강하게 끌리는 것도, 그가 자신의 존재를 투영할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즉, 치히로는 자아를 지키는 인물이고, 가오나시는 그 자아를 잃은 존재로 대비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SNS나 사회적 기준에 따라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심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보다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가오나시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진정한 자아는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성찰과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욕망의 화신 – 소비 사회의 그림자

가오나시는 온천장 내부에서 금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의 환심을 삽니다. 그를 향한 환대는 진심이 아닌, 이익에 기반한 가짜 관계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점점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착각하며,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해 금을 더 만들어냅니다. 그는 끝없이 먹고, 더 많이 소비하며, 몸집이 점점 불어나 괴물화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허기진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비를 통해 자신을 채우려는 현대인의 공허한 내면을 상징합니다. 특히 치히로에게 금을 건네며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는, 감정 없는 물질적 교환으로 관계를 대신하려는 현대 소비문화의 문제점을 드러냅니다. 치히로는 이를 단호히 거절함으로써, 진정한 연결은 금전이 아니라 진심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결국, 가오나시의 욕망은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며, 외부 자극이 그것을 부풀려 괴물로 만든 것입니다. 그의 폭주는 인간 내면의 허기를 어떻게든 채우려는 절박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소통 불능 – 외로움과 고립의 상징

가오나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못합니다. 그는 침묵하거나, 혹은 타인의 말을 흉내 내며 의사소통을 시도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내면을 표현하지 못하고 단절된 상태에 놓인 현대인의 고립감을 상징합니다. 누구보다 관계를 원하지만, 그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몰라 폭주하는 그의 모습은,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존재의 비극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겪는 감정적 고립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붉은 다리 위, 혼자 고요히 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곳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임을 은유합니다. 이는 소속되지 못한 자의 불안과 단절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면입니다. 그의 폭력성은 본능적 악의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 감정의 왜곡으로 인해 발생한 것입니다. 이는 소통이 단절된 사회에서 얼마나 쉽게 감정이 왜곡되고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수용을 통한 변화 – 관계 속에서의 회복

영화 후반, 가오나시는 치히로와 함께 젠니바의 집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욕망을 버리고 조용한 존재로 변화합니다. 젠니바는 그를 경계하지 않고, 말없이 따뜻하게 받아줍니다. 이 경험은 가오나시에게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수용되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그는 이제 금을 만들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그저 그 자리에 머무릅니다. 이는 진정한 관계 속에서 정체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가오나시가 젠니바의 곁에 남기로 선택한 것은 자아를 되찾는 상징적인 선택입니다. 처음으로 외부 자극이 아닌, 내면의 안정 속에서 존재할 수 있게 된 그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관심과 수용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물질이 아닌 이해와 공감으로 이루어질 때, 진정한 연결과 변화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이 장면은 강하게 전달합니다. 가오나시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 온 또 다른 자아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여정은 곧 우리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과정이며, 미야자키 감독은 이를 통해 관객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