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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 그는 무엇을 상징할까?

내 삶에 좋은 정보 2025. 9. 23. 21:55

목차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오나시는 단순한 괴물이 아닌 현대인의 내면을 상징하는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얼굴도 말도 없이 등장해 처음에는 조용하고 순한 모습이지만, 외부 자극에 반응하며 욕망과 외로움에 휘둘려 괴물처럼 폭주합니다. 하지만 후반에는 다시 평화로운 존재로 변화하며, 이러한 극적 변모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치입니다.

    alt=&quot;가오나시 일러스트 - 얼굴 없는 영혼이 붉은 다리 위에 홀로 서 있는 이미지, 외로움과 정체성의 상징적 분위기를 표현한 이미지&quot;

    정체성을 잃은 존재 – 타인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자아

    ‘가오나시’는 이름 그대로 얼굴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언어와 감정을 지니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의 말투와 욕망을 흡수해 모방합니다. 이 모습은 곧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의해 정체성을 규정받는 현대인의 자아를 상징합니다. 가오나시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반응에 따라 행동하며, 존재 이유를 스스로 찾지 못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욕망을 빌려 살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더 공허해지고 외로워집니다. 이러한 모습은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꾸미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오나시가 치히로에게 강하게 끌리는 이유 또한 명확합니다. 치히로는 그와 달리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신념을 따라 행동하는 인물입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며 주체적으로 성장합니다. 가오나시는 그런 치히로에게서 자신이 잃어버린 정체’을 보고 매혹됩니다. 그는 그녀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받고 싶어 하지만, 그 욕망조차 결국 타인에게 의존하는 또 다른 형태의 결핍입니다. 두 인물의 대비는 자아를 잃은 존재와 자아를 지켜내는 존재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가오나시와 닮아 있습니다. SNS나 사회적 기준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타인의 반응에 맞춰 정체성을 조정합니다. 타인의 좋아요와 관심이 곧 자기 존재의 척도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사람들은 쉽게 자신을 잃어갑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가오나시의 모습을 통해 질문합니다. “나는 누구의 시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는 가오나시의 여정을 통해 진정한 자아는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내면의 성찰과 진실한 관계 속에서만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욕망의 화신 – 소비 사회의 그림자

    가오나시는 온천장 내부에서 금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의 환심을 삽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닌 이익에 기반한 가짜 관계였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가오나시는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착각하게 되고, 더 큰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해 금을 끝없이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그가 내놓는 금은 실체 없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욕망에 이끌려 그를 따르지만, 관계는 금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무너집니다. 이 과정에서 가오나시는 끝없이 먹고 소비하며, 점점 거대하고 추악한 괴물로 변합니다. 그의 탐식은 단순한 폭식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감추려는 시도입니다. 이 모습은 현대 소비 사회에서 욕망과 결핍이 반복되는 구조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우리는 물질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소비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욕망이 커질수록 내면의 공허는 오히려 깊어집니다. 가오나시가 아무리 먹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외로움과 인정 욕구를 물질로 대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치히로에게 금을 내밀며 관계를 맺으려는 장면은, 감정 없는 물질적 교환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현대인의 단면을 상징합니다. 치히로는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며, 진정한 관계는 금전이 아닌 진심과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결국 가오나시의 욕망은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통해 결핍을 채우려 했지만, 그 욕망은 오히려 자신을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탐욕의 상징이자,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인간의 불안과 결핍의 형상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가오나시의 폭주를 통해 묻습니다. “당신의 욕망은 진짜 당신의 것인가?” 소비가 삶의 중심이 된 오늘, 가오나시는 욕망에 잠식된 인간의 초상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소통 불능 – 외로움과 고립의 상징

    가오나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못합니다. 그는 침묵하거나, 다른 이의 말을 흉내 내며 의사소통을 시도하지만, 그 시도는 언제나 어딘가 어긋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된 현대인의 고립감을 상징합니다. 그는 관계를 원하지만, 관계 맺는 방식을 모릅니다.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존재, 이해받고 싶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단면이 바로 가오나시입니다. 그의 침묵은 단순한 무언이 아니라, 감정을 전할 수 없는 시대의 단절된 소통 구조를 드러냅니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붉은 다리 위, 안개 낀 공간 속에서 홀로 서 있는 모습입니다. 이 장면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선 존재로서, 그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외로운 존재임을 상징합니다. 붉은 다리는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 통로이지만, 가오나시는 그 사이에 머물며 양쪽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의 불안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면입니다. 그는 공간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경계의 존재로 머무릅니다. 가오나시의 폭력성은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받지 못한 감정이 왜곡된 결과입니다. 그는 단지 연결을 원했지만, 그 방식이 뒤틀려 파괴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의 감정적 단절이 얼마나 쉽게 오해와 폭력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가오나시를 통해 진정한 소통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고립과 공허를 경고합니다. 결국 그의 침묵은 인간의 외로움이 낳은 절규이며, 우리가 잊고 있는 진심 어린 관계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수용을 통한 변화 – 관계 속에서의 회복

    영화 후반부에서 가오나시는 치히로와 함께 젠니바의 집을 찾아갑니다. 욕망과 혼란으로 가득 찼던 온천장을 떠나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하는 이 여정은, 그가 내면의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전환점입니다. 젠니바는 가오나시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조건 없는 수용을 받은 가오나시는 금을 만들어내지도,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지 그 자리에 존재하며,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고요함 속에서 안정을 찾습니다. 이 경험은 진정한 관계 속에서만 자아가 회복될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가오나시가 젠니바의 곁에 남기로 한 결정은 단순한 머묾이 아니라 상징적 선택입니다. 그는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합니다. 괴물로 여겨졌던 그의 모습이 온화하게 변하는 장면은, 인간 내면의 치유가 외부의 비난이 아닌 ‘수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감독은 젠니바의 따뜻한 태도를 통해 관계의 본질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통제나 보상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관심과 수용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 욕구가 물질적 조건이나 사회적 기준에 의해 왜곡될 때, 관계는 쉽게 파괴됩니다. 가오나시의 변화는 진정한 치유는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진심 어린 이해와 공감 속에서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는 괴물이 아니라, 외면당했던 인간의 또 다른 자아입니다. 그의 여정은 결국 우리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과정이며, 감독은 이를 통해 관객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